딥다이브 목록
뉴스해설2026년 4월 1일뉴스룸

🎯 '일하면 곧 근로자' — 870만 명의 운명을 바꿀 근로자 추정제, 5월 입법 카운트다운

배달라이더부터 프리랜서 강사까지, 입증책임이 뒤집힌다

정부가 5월 입법을 목표로 '근로자 추정제'와 '일하는 사람 기본법' 패키지 입법을 추진 중이다. 870만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근로자성 입증 부담이 사용자 측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전환이지만, 경영계는 소송·비용 폭탄을, 노동계는 실효성 부족을 지적하며 양쪽 모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근로자추정제#일하는사람기본법#플랫폼노동자#특수고용직#근로기준법개정#입증책임전환

배달 한 건에 3,500원. 보험도, 퇴직금도, 유급휴일도 없다. 그런데 앱을 끄면 불이익, 거부하면 콜 차단. 이 사람은 근로자일까, 자영업자일까? 지금까지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이 '노동자 본인'이었다. 그 룰이 곧 뒤집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고용노동부는 3월 31일 서울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권리 밖 노동 보호를 위한 패키지 입법 간담회'를 열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김태선 의원실, 배달라이더·프리랜서 강사·예술인 등 현장 종사자, 노·사단체와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핵심 안건은 두 가지다.

  • 근로기준법 개정 — 근로자 추정제 도입 (제104조의2 신설):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일단 근로자로 추정한다.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은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
  • 일하는 사람의 권리 기본법 제정: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노무제공자에게 인간 존엄, 안전·보건, 공정한 계약 체결, 괴롭힘 금지, 사회보장 접근 등 기본권을 법률로 명시한다.

정부는 5월 1일 노동절을 입법 목표 시점으로 잡았다. 이재명 정부의 '1호 노동법'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정치적 무게감도 상당하다.

누가 영향을 받나 — 870만 명의 지형도

고용노동부가 이번 패키지 입법의 보호 대상으로 명시한 규모는 약 870만 명이다. 여기엔 144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와 88만 플랫폼 노동자뿐 아니라, 프리랜서·1인 자영업자 형태로 일하면서 사실상 종속적 관계에 놓인 광범위한 노무제공자가 포함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 플랫폼 종사자: 배달라이더,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가사도우미 — 2023년 기준 88만 3,000명이며, 2021년(66만 1,000명) 대비 2년 만에 34% 급증
  • 특수고용직: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등 — 약 144만 명
  • 프리랜서·기타: IT 개발자, 디자이너, 강사, 예술인, 방송작가 등 — 나머지 수백만 명

지금까지 뭐가 문제였나 — '입증의 벽'

현행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이 정의만으로는 특고·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근로자성 판단에 종속성 테스트를 적용해왔다(대법원 2006.12.7. 선고 2004다29736 판결). 업무 지휘·감독 여부, 근무시간·장소의 구속, 독립 사업 영위 가능성, 보수의 성격, 전속성, 사회보험 적용 여부 등 수많은 요소를 종합 판단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 모든 입증 부담이 근로자에게 있었다. 배달라이더가 "나는 근로자"라고 주장하려면, 앱 알고리즘의 통제 구조, 콜 거부 시 불이익 패턴, 실질적 전속성을 본인이 하나하나 증명해야 했다. 대기업 법무팀 앞에서 개인이 이 싸움을 이기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2024년 7월 대법원의 '타다' 판결이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대법원은 차량 호출 서비스 운전기사에 대해 "알고리즘이 배차·경로·요금·평가를 통제하는 것도 사실상 지휘·감독"이라고 판단하며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판결도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뭐가 달라지나 — 제104조의2의 핵심 구조

김주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2025년 12월 24일 발의)의 핵심은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1. 추정의 출발점: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한 사실이 확인되면, 그 사람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추정된다.
  2. 반증 책임은 사용자에게: 사용자(노무수령자)가 "이 사람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추정이 번복된다.
  3. 적용 범위: 임금·퇴직금·수당 청구, 해고 무효 확인, 손해배상 등 민사적 분쟁에 적용된다.
  4. 근로감독관 권한 강화: 진정·고소·고발 사건에서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지금까지는 배달라이더가 "저는 근로자입니다"라고 법원에서 증명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플랫폼 회사가 "이 사람은 근로자가 아닙니다"라고 증명해야 한다. 공이 완전히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양쪽 다 반발하고 있다 — 노사의 엇갈린 불만

흥미로운 점은 경영계도, 노동계도 모두 불만이라는 것이다.

경영계: "소송 폭탄, 비용 폭탄"

  • 소상공인연합회는 "사업주가 근로자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 플랫폼·IT 업계는 프리랜서 계약 종료 후 근로자성 소송이 급증할 것을 우려한다.
  • 근로자로 추정되는 순간 최저임금, 퇴직금, 4대보험, 유급휴일이 자동 적용되므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한다.
  • "신규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노동계: "무늬만 추정제"

  •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정의(제2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 "추정제가 민사소송에만 적용되어 사후구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 일하는 사람 기본법 역시 위반 시 500만 원 이하 과태료에 그쳐 "이빨 빠진 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이 법이 통과되면 실무 현장에서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분야별로 체크해보자.

사업주·인사담당자 체크리스트

  • 계약서 전면 재검토: 위탁·도급·프리랜서 계약서가 실질적 지휘·감독 관계를 숨기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형식은 도급, 실질은 고용"인 관계가 가장 큰 리스크다.
  • 업무 지시 방식 문서화: 알고리즘·앱·매뉴얼을 통한 간접 통제도 지휘·감독으로 인정될 수 있다. 업무 수행 방식의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 4대보험·퇴직금 재정비: 근로자로 추정될 경우 소급 적용 가능성이 있다. 현재 위탁 계약으로 운영 중인 인력의 규모와 비용 영향을 미리 산정해둘 필요가 있다.
  • 분쟁 대비 증거 체계 구축: 사업주 측에서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하려면, 업무 위탁의 독립성·전문성·대체 가능성 등을 객관적 자료로 갖춰놓아야 한다.

노동자·프리랜서 체크리스트

  • 업무 수행 과정 기록 습관화: 앱 통보 스크린샷, 콜 거부 시 불이익 내역, 실제 근무시간 등을 꾸준히 저장해두면 분쟁 시 결정적 자료가 된다.
  • 전속성 여부 확인: 다른 플랫폼·업체와 동시 계약이 가능한지, 실질적으로 한 곳에 전속되어 있지 않은지 점검하라.
  • 보수 구조 파악: 고정급이 있는지, 건별 수수료인지, 경비를 누가 부담하는지 등은 근로자성 판단의 핵심 요소다.

이 법안, 정말 통과될까

정치 지형만 놓고 보면 통과 가능성이 높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를 점하고 있고, 이재명 정부의 1호 노동 입법으로 정치적 동력이 강하다. 5월 1일 노동절이라는 상징적 시점도 입법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다만 법안의 최종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 경영계의 반발을 감안해 추정 범위를 특정 업종이나 종사자 유형으로 한정하거나, 소규모 사업장 적용 유예 같은 보완 장치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근로자 정의 자체의 확대(제2조 개정)까지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노동법의 보호 울타리가 870만 명을 향해 확장되고 있다는 것. 배달 앱 하나로 생계를 이어가는 라이더도, 플랫폼에서 강의를 올리는 강사도, 계약서 한 장으로 묶인 IT 프리랜서도 — 더 이상 혼자 법정에서 "나는 근로자"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문제는 그 울타리의 높이와 견고함이다. 5월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딥다이브 더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