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다이브 목록
판례분석2026년 4월 4일판례 분석팀

🎯 근로자인지 아닌지 — 노동위원회가 근로자성을 인정한 사건과 기각한 사건, 결정적 차이 3가지

같은 기준, 다른 결과 — 계약서 이름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승패를 갈랐다

계약서에는 '프리랜서'라고 적혀 있었다. 국회방송국에서 13년간 프로그램 대본을 쓴 방송작가 A씨. 그런데 2022년 9월,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갑자기 "다음 달부터 안 나와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서면 한 장 없이, 구두로.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회사 측 주장은 단순했다. "집필계약을 맺은 프리랜서인데, 해고가 아니라 계약 만료"라는 것이다.

#근로자성#부당해고#프리랜서#플랫폼노동#종속성판단#판례분석

계약서에는 '프리랜서'라고 적혀 있었다. 국회방송국에서 13년간 프로그램 대본을 쓴 방송작가 A씨. 그런데 2022년 9월,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갑자기 "다음 달부터 안 나와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서면 한 장 없이, 구두로.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회사 측 주장은 단순했다. "집필계약을 맺은 프리랜서인데, 해고가 아니라 계약 만료"라는 것이다.

과연 A씨는 근로자일까, 프리랜서일까. 이 질문은 단지 호칭의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냐 아니냐에 따라 부당해고 구제, 퇴직금, 4대보험 적용 여부가 완전히 달라진다.

계약서 이름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기준이다

대법원이 수십 년간 일관되게 적용해온 원칙이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한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핵심은 '종속성'이다.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아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따진다.

  •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 적용을 받는지
  •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사용자가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되는지
  • 비품·도구를 본인이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지
  • 보수가 근로 자체의 대가인지, 사업 성과에 따른 이익 배분인지
  • 근로 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이 있는지

그런데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도 결론은 극명하게 갈린다. 비슷해 보이는 사건에서 한쪽은 근로자로 인정받고, 다른 쪽은 "근로자 아니다"라는 판정을 받는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걸까.

이긴 사건: 국회방송국 방송작가 — "13년간 출퇴근 하고 지시받았다"

서울행정법원 2023구합69763 사건. 국회방송국에서 2009년부터 방송작가로 일한 A씨, B씨의 사건이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집필표준계약서'를 체결한 프리랜서 작가였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권고에 따라 도입된 표준계약이었고, 마지막 계약 기간은 2021년 10월부터 2022년 9월까지였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며 기각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판단을 뒤집었다. 작가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2년을 초과하여 근무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인데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으므로 부당해고라고 판정한 것이다.

법원(행정소송)도 중노위 판단을 지지했다. 핵심 근거는 이렇다.

  • 지휘·감독: 방송국이 프로그램 기획안·구성안을 결정하고, 작가는 그에 따라 대본을 작성
  • 시간·장소 구속: 사무실에 출근해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수행
  • 전속성: 13년간 해당 방송국에서만 근무, 다른 곳에서 동시에 일하지 않음
  • 보수의 성격: 매월 정기적으로 고정 원고료를 지급받음

법원은 특히 "기본급이나 고정급의 유무,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여부, 사회보장제도 가입 여부 등은 사용자가 경제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마음대로 정할 여지가 크므로, 그러한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진 사건 1: 음식점 주방장 — "동업계약서가 발목을 잡았다"

서울행정법원 2023구합81992 사건. 음식점 'D'의 주방장으로 일하던 원고가 부당해고를 주장한 사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법원 모두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원고는 식당 건물 임차계약에 공동 당사자로 참여했고, 4인이 6,000만 원씩 출자한 '동업계약서'를 작성했으며, 건물을 매입할 때 1/4 지분으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다. 수익도 25%씩 배분하기로 약정되어 있었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계약 명칭과 내용, 원고가 보유한 건물 지분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는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통상적인 근로자와 현저히 다른 지위에 있었다."

아무리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사장의 지시를 받았더라도, 이익 배분 구조와 공동 투자 사실이 '동업자'라는 판단을 뒤집을 수 없었다.

진 사건 2: 택배 배달기사 — "위탁계약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중앙노동위원회 2025부해OOO 사건(2025. 12. 19. 판정). 택배 배달기사가 부당해고를 주장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노동위원회는 "사용·종속적인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판정의 핵심 근거는 이렇다.

  • 당사자 간 '위탁계약서'에 택배 배달업무 세부사항이 명시되어 있었고, 이를 강제로 체결했다는 객관적 사정이 없었다
  • 사용자가 하역작업을 지시하는 등의 직접적 지휘·감독 정황이 부족했다
  • 배달 경로와 시간에 대한 자율성이 상당 부분 인정되었다

같은 '배달' 업무라도 플랫폼 드라이버와 택배 기사의 판단이 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대법원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사건: 타다 드라이버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두32973 판결. 대법원이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타다 드라이버들은 쏘카의 협력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했다. 쏘카와 직접 계약관계조차 없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기존 판단기준에 더해 플랫폼 노동의 특수성을 반영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 직접적인 개별 근로계약을 맺을 필요성이 적은 사업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 알고리즘에 의한 일감 배분과 노무관리도 사용자의 지휘·감독에 해당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이런 점들을 주목했다.

  • 쏘카가 드라이버의 임금과 업무 내용을 결정한 점
  • 앱이 대기장소를 지정하고, 드라이버가 배정된 업무를 사전에 지정된 방식대로 수행해야 했던 점
  • 드라이버가 제3자에게 업무를 대행시키거나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없었던 점
  • 보수가 근무시간에 비례한 것으로 근로 자체의 대가로 볼 수 있는 점

반면 배달 라이더는 달랐다. 콜 수락 여부와 배달 경로를 라이더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달랐다(서울행정법원 2024 판결).

승패를 가른 결정적 차이 3가지

위 사건들을 관통하는 핵심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1. 업무 수행의 자율성이 진짜 있었는가

방송작가는 출근해서 방송국이 정한 기획안대로 대본을 써야 했다. 타다 드라이버는 앱이 지정한 장소에서 배정된 콜을 받아야 했다. 반면 택배 기사는 배달 경로를 스스로 정할 수 있었고, 배달 라이더는 콜을 거부할 수 있었다. "거부권이 있는가"가 핵심이다.

2. 보수가 '일한 시간의 대가'인가, '성과의 배분'인가

방송작가의 월 고정 원고료와 타다 드라이버의 시간 비례 보수는 '근로의 대가'로 인정되었다. 반면 음식점 주방장의 수익 25% 배분은 '동업자의 이익 분배'로 판단되었다. 고정급이 있다면 근로자 쪽으로, 성과 배분이면 사업자 쪽으로 기울어진다.

3. 계약 체결 당시 실질적 협상력이 있었는가

법원은 "기본급 유무,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4대보험 가입 여부는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로 정할 수 있으므로 이것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계약서에 '프리랜서'라고 쓰여 있어도 뒤집힐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음식점 주방장처럼 직접 투자하고 소유 지분까지 가진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무에서 꼭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

  • 출퇴근 시간과 장소를 회사가 지정하고 있는가 — 지정하고 있다면 종속성의 강력한 징표
  • 업무 내용과 방법을 회사가 결정하는가 — "알아서 해"가 아니라 구체적 지시가 있다면 근로자 쪽
  • 일감 거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가 — 형식적 거부권만 있고 불이익이 따른다면 무의미
  • 보수가 시간·일수 기준인가, 성과·수익 배분인가 — 전자라면 근로의 대가로 인정될 가능성 높음
  • 본인 비용으로 도구·장비를 마련하는가 — 회사 비품을 쓴다면 독립 사업자 주장이 약해짐
  • 제3자에게 업무를 대행시킬 수 있는가 — 대체 투입이 불가능하면 종속성의 강한 징표

한 줄 정리

계약서에 뭐라고 적혀 있든, 법원은 '실제로 어떻게 일했느냐'만 본다. 출퇴근 지정, 업무 지시, 고정 보수 — 이 세 가지가 겹치면 계약서 제목이 '위탁'이든 '도급'이든 근로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딥다이브 더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