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라이더도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 38년 만에 깨어난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
정부 최초로 도급제 노동자 별도 최저임금 심의 요청 — 시급 7,864원 라이더부터 택배기사까지, 870만 명의 임금 지형이 바뀐다
고용노동부가 2027년 최저임금 심의요청서에 '도급제 노동자 별도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역사상 처음 포함했다. 1988년 제정 이후 38년간 한 번도 적용되지 않았던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이 깨어난 것이다. 배달라이더 평균시급 7,864원(최저임금 대비 76%)이라는 현실 앞에서, 올 여름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이 870만 플랫폼·도급 노동자의 임금 지형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배달 한 건에 3,000원. 비가 쏟아지는 밤, 오토바이를 몰고 아파트 14층까지 음식을 올려다 놓은 라이더의 시급은 7,864원이다. 2026년 최저임금 10,320원보다 2,456원이 모자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는 38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38년 동안 잠자던 조항이 깨어났다
2026년 3월 31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한 2027년도 최저임금 심의요청서에 이례적인 항목이 포함됐다.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 — "도급제(都給制) 등으로 임금을 정하는 근로자에 대해 별도의 최저임금을 따로 정할지 여부"를 심의해달라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1988년 최저임금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했다. 시간급으로 임금을 정하기 어려운 노동자를 위해 생산고(生産高) 또는 업무 단위로 별도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문제는, 38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심의요청서에 이 조항을 명시적으로 포함한 것 자체가 역사상 처음이다.
라이더 시급 7,864원 — 숫자가 말하는 현실
2025년 민주노동연구원이 배달 라이더 1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 개인 비용 공제 후 시급: 7,864원 (최저임금 대비 76%)
- 대기시간 포함 시급: 7,416원
- 주휴수당 환산 포함 시급: 6,198원 (최저임금의 60%에 불과)
배달라이더뿐만이 아니다. 대리운전 기사, 택배기사, 가전제품 방문점검 노동자, 보험설계사, 타일공 — 건당·성과급으로 임금을 받는 도급제 노동자 대다수가 비슷한 처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행 시간급 기반 최저임금 체계가 사실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도급제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면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근로시간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사업주가 부족분 보전을 회피하기 쉬운 구조다. 플랫폼이 배차를 통제하면서도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위탁'을 주장하는 한, 시간급 최저임금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왜 지금인가 — 3년간의 투쟁과 정치 지형 변화
이번 심의요청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배달라이더, 대리운전기사, 웹툰작가 등 다양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3년 넘게 도급제 최저임금 적용을 요구해왔다. 2023년 실태조사, 2025년 국회 토론회, 그리고 양대 노총의 지속적 압력이 이어졌다.
결정적 변화는 정치 지형이다. 현 정부 출범 후 고용노동부의 정책 기조가 플랫폼 노동자 보호 쪽으로 선회했다. 노동부 장관이 심의요청서에 제5조 제3항을 명시한 것은 "논의하라"는 행정적 시그널을 넘어, "방향을 잡아달라"는 정책 의지로 읽힌다.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최저임금위원회 심의의 세 가지 쟁점
-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 — 모든 업종에 동일 최저임금을 적용할지, 사업 종류별로 달리 적용할지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에도 반복 논의됐으나 한 번도 차등 적용이 실현된 적 없다.
- 도급제 노동자 별도 최저임금 — 핵심 쟁점이다. "건당 수수료 기준 최저보수"를 도입할지, 아니면 시간급 환산 방식을 유지하되 계산법만 보완할지. 택배기사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 ÷ 평균 물량 = 건당 최저수수료"로 산출하는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
- 최저임금 수준 결정 — 2027년 최저임금 인상률 자체도 뜨거운 감자다. 2026년 10,320원에서 얼마나 올릴지가 노사 간 첨예한 대립 사안이다.
사업주가 체크할 사항
- 도급계약 재점검 — 건당 수수료 단가가 최저임금 환산액에 미달하는지 확인. 별도 최저임금이 도입되면 계약 조건 재설정이 불가피하다.
- 플랫폼 사업자의 비용 구조 — 배달 수수료 인상 시 자영업자(음식점주) 부담이 증가한다. "비용 부담이 한계를 넘으면 자영업자와 라이더가 동시에 타격받는 공멸 시나리오"(헤럴드경제)라는 전문가 우려도 나온다.
- 근로시간 기록 시스템 — 도급제 노동자의 실노동시간 산정 방식이 정해지면, 앱 로그·GPS 기록 등이 법적 증빙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는 이미 움직였다 — 뉴욕, 스페인, 호주
미국 뉴욕시는 2023년부터 배달 라이더에게 시간당 최저 19.96달러(약 2만 8천 원)를 보장한다. 대기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페인은 2021년 '라이더법(Ley Rider)'을 제정해 플랫폼 배달노동자를 근로자로 간주하고 최저임금을 적용했다. 호주와 대만도 유사한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한국만 예외로 남기엔, 플랫폼 노동의 규모가 이미 너무 크다.
다음 수순 — 4월 전원회의, 그리고 143km 대행진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는 4월 중 개최될 예정이다. 심의요청일(3월 31일)로부터 90일 이내에 결론을 내야 하므로, 늦어도 7월 초에는 2027년 최저임금과 함께 도급제 별도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라이더유니온은 4월 28~29일 세종시에서 청와대까지 약 143km 대행진을 예고했다. "38년 동안 잠자던 법 조항이 이번에도 잠들게 놔두지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메시지다.
심의가 시작됐다고 해서 건당 최저임금이 자동으로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논의의 문을 연 이상, "도급제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남의 일"이라는 38년 관행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올 여름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이 870만 플랫폼·도급 노동자의 지갑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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