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역계약서 한 줄이 교섭의무를 만든다 — 원청 사용자성 인정·기각을 가른 결정적 증거
인덕대·성공회대·공공기관 6건 연속 인용, 승패를 가른 서류의 정체
서울지노위가 인덕대·성공회대의 원청 사용자성을 민간 최초로 인정했다. 용역계약서의 임금·고용 조건 명시, 과업지시서의 근로방식 통제, 복리후생비 직접 지급이 핵심 증거였다. 대법원 2007두8881 판결의 '실질적·구체적 지배' 기준이 교섭 시정 사건에 본격 적용되는 흐름이다.
"하청 직원 복리후생비를 원청이 직접 줬다고요? 그 서류 하나가 교섭 테이블을 만들었습니다."
2026년 4월 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인덕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의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 이후 민간 부문 최초의 판정이다. 불과 5일 전인 4월 2일에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원자력연구원·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공공기관 4곳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6건 연속 인용. 그런데 모든 사건이 인용된 건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인정된 사건과 기각 위험이 높았던 쟁점을 비교해, 승패를 가른 결정적 차이를 분석한다.
사건의 전말 — 교섭 요구에 침묵한 원청들
2026년 3월 10일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자,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소속 하청 노조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인덕대·성공회대 시설관리 용역 노동자들은 시행 당일 각 대학에 교섭 요구를 신청했다. 교섭 의제는 다섯 가지 — 노동안전, 작업환경, 복리후생, 임금, 근로시간이었다.
개정 노조법에 따르면 원청은 교섭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그런데 두 대학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다. 하청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시정 신청을 제기했고, 서울지노위는 4월 7일 심판회의를 열어 두 건 모두 인용했다.
이긴 사건 — 서류가 말해준 '실질적 지배'
서울지노위의 핵심 판단은 이렇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 또는 근무환경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
이 판단의 근거가 된 증거들을 하나씩 보자.
- 용역계약서의 근로조건 명시 — "용역 기간 중 고용 유지", "설계한 인건비의 낙찰률 이상 지급" 등 임금과 고용 안정 조건이 계약서에 적혀 있었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과업지시서의 세부 통제 — 업무 내용, 직종별 배치, 근로시간, 투입 인원수, 자격 요건까지 원청이 정해놓은 지시서가 존재했다. 단순한 결과물 발주가 아니라 근로 방식 자체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 복리후생비 직접 지급 — 복지포인트, 명절 상여금, 식비, 문화활동비, 건강검진비를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지급한 내역이 있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의 경우 노사 공동협의회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 휴게시설 등 작업환경 통제 — 대학 시설관리 용역의 특성상, 휴게실 위치·규모·운영 시간을 원청인 대학이 결정했다. 작업환경 개선 교섭 의제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기각 위험이 높은 사건 — 증거가 사라지면
그렇다면 모든 교섭 요구가 인용될까? 그렇지 않다. 서울신문(2026.4.7.) 보도에 따르면, 일부 전문가들은 원청이 "서류 증거를 없애고 복리후생비 지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사용자성 회피를 시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인정 여부를 가른 핵심은 구조적 통제의 '서류화'였다. 정리하면 이렇다.
- 인정된 사건: 용역계약서에 임금·고용 조건 명시 + 과업지시서에 근로시간·인원·배치 특정 + 복리후생비 직접 지급 내역 존재
- 기각 위험 사건: 계약서가 결과물 납품 형태로만 작성 + 근로조건 관련 지시 문서 부재 + 복리후생은 하청이 독자 운영
대법원도 이미 같은 기준을 세워놓았다.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현대중공업 사건)에서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의 대상인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서울지노위 판정은 이 대법원 판례의 기준을 교섭요구 시정 사건에 그대로 적용한 셈이다.
법적 근거 — 노조법 제2조 제2호가 핵심
원청 사용자성의 법적 근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 제2호다. 이 조항은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정의한다.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이 정의가 확대되면서,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은 원청도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 당사자만 사용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개정법은 노조법의 '사용자' 개념을 실질적 지배 기준으로 열어놓은 것이다.
참고로 이 판정은 법원 판결(판례)이 아니라 노동위원회의 판정이다. 원청이 불복하면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불복하면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 아직 확정된 판례는 아니지만, 6건 연속 인용이라는 흐름 자체가 실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 용역계약서 점검이 급선무다 — 계약서에 "하청 근로자 임금 기준", "고용 유지 의무", "근로시간 지정" 등의 문구가 있다면, 원청 사용자성 인정의 핵심 증거가 된다. 계약 갱신 시 문구를 삭제한다고 해서 기존 관행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 과업지시서는 양날의 검 — 품질 관리를 위해 상세한 과업지시서를 작성하는 건 실무상 불가피하다. 하지만 "근로시간, 인원 배치, 자격 요건"까지 특정하면 도급이 아닌 지배 관계로 판단될 수 있다.
- 복리후생비 직접 지급 내역 확인 —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명절 상여금·식비·건강검진비를 직접 지급한 기록이 있다면,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의 유력한 증거가 된다.
-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7일 이내 공고 의무 — 개정 노조법에 따라 교섭 요구를 받으면 7일 이내에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침묵은 시정 신청으로 이어지고, 고의적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다.
- 판정 ≠ 판례 — 이번 결정은 노동위원회 판정이지 법원 판결이 아니다. 원청이 재심·행정소송으로 다투면 최종 결론까지 1~2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6건 연속 인용이라는 추세는 무시하기 어렵다.
한 줄 정리: 용역계약서에 임금·근로시간을 적어놓고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이제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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