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가 먼저 손 내밀었다 — AI·로봇 전환 시대, 고용영향평가가 필요한 이유
미래발전위원회 12인이 첫 대화를 시작한 날 — 아틀라스가 공장에 들어오기 전에 노사가 해야 할 것들
기아가 4월 6일 노사 12인으로 구성된 미래발전위원회를 열어 AI·로봇 전환 시대의 고용 문제를 처음으로 논의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2028년 공장 투입이 예고된 가운데, 노조는 단협에 '총고용 보장'을 명문화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현행법의 고용영향평가는 정부 정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민간 기업의 기술 도입에 대한 근로자 사전 협의는 아직 법적 의무가 아니다.
연봉 4,000만 원짜리 로봇이 연봉 1억 원짜리 숙련공을 대체한다면, 노동조합은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4월 6일, 기아가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화를 시작했다.
기아 미래발전위원회, 오늘 첫 회의를 열다
기아는 오늘(4월 6일) 노사 관계자 12인으로 구성된 미래발전위원회를 개최했다. 기아 대표이사, 기아자동차지부장, 공장장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안건은 단 하나 — AI·로봇 산업 전환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다.
배경은 명확하다. 올해 1월 CES 2026에서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도화선이 됐다. 56개 자유도 관절과 360도 카메라를 장착한 이 로봇은 2028년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기차 공장에 투입된다. 처음에는 부품 분류 같은 서열 작업부터, 2030년에는 부품 조립까지 작업 범위를 넓힌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의 로봇 양산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 측은 "국내 공장에는 아틀라스를 투입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노조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해외 공장에서 먼저 검증한 뒤 국내로 확대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현장의 판단이다.
노조가 꺼내 든 카드: '총고용 보장' 명문화
기아 노조(기아자동차지부)는 이미 구체적인 요구안을 준비했다. 핵심은 단체협약 제47조(자동화·신기술 도입 관련 조항)에 "총고용을 보장한다"는 문구를 신설하는 것이다.
'총고용 보장'이란 정리해고나 인위적 감축 없이 현재 인력 규모를 유지하겠다는 노사 간 약속이다. 기존 단협에는 신기술 도입 시 "노조에 통보하거나 의견을 반영한다" 정도의 절차 규정만 있었을 뿐, 고용 자체를 지킨다는 원칙은 빠져 있었다.
노조는 5월 중 싱가포르 현대차그룹 혁신센터(HMGICS)와 미국 HMGMA, 필요하면 기아 멕시코 공장까지 직접 방문해 자동화 현장을 확인할 계획이다. 실제 자동화율이 어느 수준인지, 사람 없이 운영이 가능한 공정이 있는지를 눈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총고용 보장의 구체적 방식은 하반기 임단협에서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왜 '고용영향평가'가 열쇠인가
기아의 이번 움직임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노사 갈등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AI·자동화가 일자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 변화를 누가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거버넌스 질문이다.
한국에는 이미 법적 틀이 존재한다.
- 고용정책기본법 제13조(고용영향평가) —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는 소관 정책이 일자리 증감과 고용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 수립·시행에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장관은 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하며, 필요하면 관계 기관에 개선을 권고할 수 있다.
-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2023년 10월 제정, 2024년 4월 시행) —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일자리 이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이다. 고용노동부장관이 '산업전환 고용안정 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고용영향 사전평가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문제는 이 법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 기업이 AI나 로봇을 대규모로 도입할 때 근로자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의무는 현행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기아 노조가 단협에 명문화를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법이 보장하지 않는 것을 계약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흐름은 이미 '기술 도입 전 근로자 협의'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 EU AI법(AI Act) — 2024년 8월 발효. 채용·승진·해고·성과평가에 사용되는 AI를 '고위험 시스템'으로 분류했다. 사업장에서 고위험 AI를 사용하기 전에 근로자 대표에게 사전 고지해야 하며, 2026년 8월부터 대부분의 고위험 AI 규정이 본격 적용된다.
- 스페인 노동개혁(2021) — 기업이 AI 시스템을 근로자 관리나 평가에 활용할 경우, 그 기준과 절차를 근로자 대표에게 설명하고 협의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알고리즘 투명성을 법제화한 사례다.
- 독일 사업장조직법(BetrVG) —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가 신기술 도입 시 공동결정권(Mitbestimmung)을 행사한다. 기업이 생산 공정이나 업무 방식을 바꿀 때 사전에 사업장협의회와 협의해야 하며, 합의 없이는 도입이 불가능하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기술을 도입하기 전에 근로자 측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사후 대책이 아닌 사전 협의를 법으로 강제한다.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기아의 사례가 다른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자동화 도입을 추진하는 기업이라면 아래 사항을 점검해야 한다.
- 단체협약 점검 — 신기술 도입 관련 조항이 있는가? 통보 수준인가, 협의 수준인가? 기아처럼 '총고용 보장' 수준의 요구가 올 수 있다.
- 고용영향 사전 분석 — 자동화로 대체되는 직무, 새로 생기는 직무, 전환 교육이 필요한 인원을 파악했는가? 산업전환고용안정법의 취지를 민간에서도 자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인다.
- 근로자 대표와의 사전 소통 — 법적 의무가 아니더라도, 기술 도입 계획을 근로자 대표에게 미리 공유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사후 통보는 분쟁의 씨앗이 된다.
- 전환 교육 로드맵 — 자동화로 직무가 사라지는 근로자를 위한 재배치·재교육 계획이 있는가? 산업전환고용안정법은 '노동전환'(직업·직무가 다른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 해외 규제 동향 모니터링 — EU AI법이 2026년 8월 본격 시행되면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한국 기업도 간접 영향을 받는다. 수출 기업이라면 미리 대비해야 한다.
아틀라스가 오기 전에 대화를 시작한 것의 의미
기아 미래발전위원회의 진짜 의미는 '결론'이 아니라 '시점'에 있다. 아틀라스가 실제로 공장에 투입되는 것은 2028년이다. 2년 전부터 노사가 테이블에 앉았다는 것 자체가 달라진 풍경이다.
과거의 자동화 갈등은 대부분 사후적이었다. 로봇이 이미 라인에 들어온 뒤에야 노조가 반발하고, 파업이 터지고, 그제야 협상이 시작됐다. 기아가 이번에 선택한 방식은 다르다 — 로봇이 오기 전에 먼저 대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노조의 '총고용 보장' 요구와 경영진의 '경쟁력 확보'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있다. 하반기 임단협에서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히는지가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AI 전환을 앞둔 모든 산업의 선례가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로봇과 AI가 공장에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이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지는, 지금 이 테이블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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